Where Cool Meets Warm – Studio Curtain 전시 포스터

Where Cool Meets Warm – Studio Curtain 예정

서울시 · 종로구

기간
2026.11.04 – 2026.12.05
장소
호리아트스페이스
관람료
무료
문의
02-511-5482

전시 소개

지각하는 주체로서의 화가: 이창남의 회화  눈으로 바라본 장면을 손으로 그린다는 것은 곡예와 같은 행위다. 눈이 감지하는 것을 물감을 매개체로 손 끝의 감각을 통해 구현한다는 것은 외줄타기나 공중그네 이상으로 고도의 인간능력을 첨예하게 수련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는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진 공간을 이미 내 안에서 합의된 규칙에 따라 거리나 색채 등의 정보로 바꿔 스스로에게 전달한다. 나의 신체의 연장선상의 공간과 명암에 대한 순간적인 기호화와 해독(解讀)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만큼 팔을 뻗어야 머그컵을 잡을 수 있는지를 알고, 어둑어둑한 얼룩들은 뭐가 묻은 것이 아닌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의 눈과 지각이 매순간 정보를 전달하는 이 완벽한 시스템은 내 안에만 존재한다. 나와 외부를 잇는 감각을 통해 수신된 신호들이 나의 지각을 통해 해석되고 결론짓는 내재화된 회로인 것이다. 때문에 내 안에 구축된 이 정보체계를 그림을 그려서 외부로 이끌어내 남들이 알아보고 공감하도록 펼쳐내는 화가의 작업은 곡예사의 수련이상의 복잡하고 끝없는 수행적 누적을 요구하는 시지각적, 그리고 회화적인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창남의 화면은 볼때마다 조금 소름이 돋는다. 캔버스 틀이 결정지어준 사각형의 면적 내부에 몇 천분의 일 또는 몇 만분의 일 단위로 체계화된 논리구조가 완벽히 서있기 때문이다. 화면 전체를 볼 때 그 색은 정확하게 그 부분에 칠해지는 것이 맞았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 절묘한 색상의 선택과 터치로 화면이 채워진다. 예를 들면 유리화병에 꽂힌 장미그림에서 그 질서는 압도적이다. 현실보다 더 확증적으로 그는 완벽한 그의 수사학을 구사하여 그곳에는 투명한 유리화병이 있고, 물이 담겨 있으며 여러 송이의 분홍 장미가 꽂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다. 우리 쪽을 바라보는 꽃망울은 화면 중 우리와 가장 가깝게 위치하기 때문에 겹겹으로 표현된 연분홍의 꽃잎들 사이는 보다 촘촘하게 연보라, 살구, 크림슨 등의 색감을 이용한 명암과 세밀한 면처리로 도드라지게 성큼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한 입체감을 주고 있다. 그에 비해 화면 중·하단에는 흐릿하고 몽글한 연회색 얼룩들이 빛이 밝은 날 흰 벽이 어둠을 반사하면서 생기는 훤한 꽃 그림자로 보여지면서 벽과의 거리가 멀찍이 느껴지도록 한다. 유리 재질을 나타내는 밝은 하늘 색의 하이라이트나 투과한 빛이 물에 잠긴 장미 줄기에 비추는 연두색의 터치들도 모두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붓자국 수로 헤아리자면 수 십만 조각짜리인 퍼즐이 오차 없이 차분하게 맞춰져 있는 것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잠시 숨을 멎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메를로-퐁티는 말한다. ”만일 화가가 세상을 그리고자 한다면, 그가 사용하는 색채들은 이 불가분의 전체 속에 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회화는 모호하게 사물을 암시할 뿐 압도적인 융합, 존재감, 넘어설 수 없는 충만함, 즉 우리에게는 현실을 정의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붓자국은 무한한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존재하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책임이다.” 이창남의 화면에서는 화면 속에 내재된 정확한 진실을 찾아가려는 듯한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우연이 허용되지 않는 사물과 작가와의 인과적 연쇄관계인 이 감각은 그의 실존의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화면을 접하면 작가의 눈이 받아들인 공간에 대한 지각, 즉 작가를 통해 현실화된 공간이 틀림없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예를 들면 사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실이며 현실이다. 사진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이차원으로 압축한다. 즉 광학과 화학을 동원하여 나름의 기호화를 마친 또 하나의 시스템일 뿐 현실과는 먼 소외된 이미지이다. 디지털 사진의 경우 이러한 소외감은 더 깊다. 정보의 집합으로 눈속임을 만들어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과 달리 작가가 그의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현실은 그를 통해 공간으로 구축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공간이고 메를로-퐁티 식으로 말하자면 그가 바로 그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공간을 지각화 함에 따라 그는 그 공간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캔버스내의 회화적 질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창남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작업실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이유이다. 이 곳은 그의 지각이 구축한 곳, 즉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에베레스트는 가볼 수도 있고 사진을 찍어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얻은 이미지는 그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는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사라질 때 그 곳이 내 우주”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커튼이 있는 그림을 바라본다. 원색의 꽃무늬로 캐모플라쥐 된 채 일상을 가장하는 커튼이지만 작가에게는 언젠가부터 그의 안에 구현된 우주와 그 바깥, 비우주를 가르는 현상학적 임계점이 된 듯하다. 커튼이 걸린 창틀은 그래서 작업실의 얼룩진 벽과 밝은 외부의 전망을 가르듯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빛과 어둠의 경계를 바라보도록 한다. 작가의 작업실에는 외부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곳에서 밖을 내다보는 작업은 그의 세계를 연장한다. 금호동 언덕아래로 보이는 빌라들, 수직적인 신축 아파트들 그 너머 가로로 흐르는 한강과 강남의 빌딩들은 어디까지가 그의 시지각의 한계인지 시험한다. 10여년간 사이의 건물들의 변화를 기록하면서 작가에게 체험된 공간으로서의 이 서울의 한 조각은 작가의 몸과 그의 먼 연장선상의 세상, 즉 외부를 상기하도록 한다. 이 복잡한 화면 속에서도 스프마토에 젖은 듯 건물을 표현하는 밝고 섬세한 터치들은 역시 믿을 수 없이 정확하고 질서정연하다. 그의 몸과 그의 지각을 점유하는 이 광경은 그의 안으로, 아니 오히려 그가 또 다시 그의 몸을 세상에 빌려줌으로써 그려진 것이 아닐까.  서울여자대학교 조교수 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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